'커뮤니티에 들어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음... 글쎄요... 열린 마음과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라는 식으로 다소 추상적인 답을 하게 된다. 물론 열린 마음은 중요하다. 그러나 커뮤니티는 말 그대로 생활을 함께 하는 실제의 삶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 말고도 여러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번 찾아보았다.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란?

 

1. 조리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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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사를 50분만에 뚝딱 해내야 한다. (출처: flickr @yvestown)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 밥을 지을 수 있는가? 

-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달걀후라이를 부칠 수 있는가?
- 된장국과 된장찌개의 차이를 아는가? 
-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의 어떤 부위를 넣어야 하는가? 
- 콩나물을 삶을 때는 뚜껑을 열어야 할까 닫아야 할까? 
- 쌈장이 없다면 만들 수 있는가? 
- 갖은 양념에는 무엇이 들어가는가? 
- 참기름과 들기름을 구분할 수 있는가?

 

위의 질문에 적어도 반 이상 '네'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커뮤니티 생활의 첫걸음부터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면 된다. 자기 밥을 스스로 해먹는 것은 물론, 때로는 남들도 해먹일 수 있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떡만두국 30인분 만들기', '멸치다시마 국물 내는 법', '김치 없을 때 겉절이 만드는 법'이다. 

 

사실 나는 스파게티와 닭도리탕은 만들 줄 알았지만, 된장찌개 끓이는 법이나 잡채 만드는 법 같은 것은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상당한 고난이 있었지만 어느덧 이제 나는 커뮤니티 공인 '카레의 여왕'이 되었다. 그동안 내 실험작을 묵묵히 드셔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2. 기초 생활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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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다못해 도움을 청하려 해도 공구 이름쯤은 알아야 한다. (출처: flickr @flattop341)


- 전구가 나갔을 때 교체할 수 있는가? 
- 세탁기의 수평이 맞지 않을때 바로잡을 수 있는가? 
- 하수구가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할까? 
-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어디를 먼저 살펴봐야 할까?
- 컴퓨터가 느려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 펜치, 니퍼, 몽키스패너를 구분할 수 있는가?
- 20kg 쌀자루를 들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위의 질문에 대부분 '네'라고 답할 수 없다면, 9첩 반상을 차려내는 실력의 소유자라도 커뮤니티에서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일반 가정에서라면 상당히 엄격한 '성 역할'로 구분된 것도 커뮤니티에서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해야 할 때가 많다. 

 

나는 학교다닐 때 '가정'만 배웠고, '기술'은 못 배운 세대이다. 그래서 커뮤니티에 와서는 '수도꼭지도 갈 줄 몰라?'라는 핀잔을 듣고 약간 열이 받아서 서점에 가서 고등학교 '기술' 교과서를 사가지고 와서 공부했다. 그 다음에는 나만의 공구 상자를 만들어서 하나씩 공구를 채워넣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맥가이버가 될 필요는 없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무거운 것을 드는 능력'이다. 커뮤니티에서는 항상 뭔가 무거운 것을 들고 여기저기 날라야 하는 일들이 많다. 나는 굳이 여자라고 빼는 일 없이 그냥 같이 했다. 그럴 때 여자라고 약한 척 하면 나중에 밥만 하게 될까봐. 결과는? 밥은 밥대로 하고 무거운 건 무거운 것대로 들고 있다.

 


3. 농사 능력
만약 오이, 고추, 토마토, 감자, 고구마, 콩, 옥수수, 상추 기르고 수확하는 법을 안다면 어느 커뮤니티에서건 환영받을 것이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나)은 뭔가를 심어서 길러보면 깜짝 놀란다. 생각보다 수확량이 많아서. 괜히 시골에 정이 넘치는 게 아니다. 저장하기도 힘든 음식들이 제철이면 한꺼번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마을 분들도 여름이면 '밭에 수박 남은 거 그냥 가져가서 먹어도 돼~'라며 인심을 팍팍 쓰시곤 한다. 

 

HAJAMA에서도 조금씩 농사를 짓는데, 가끔 시기를 놓치거나 다른 프로젝트로 바쁘면 농사를 못 짓거나 적게 지을 때가 있다. 그러면 그 해에 사람들의 마음은 눈에 띄게 각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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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평 정도의 앞마당에서 이런 것들을 매일 수확할 수 있다. (출처: flickr @124330160)

 

그러나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일단 일찍 일어나야 하고, 수시로 밭에 가봐야 하고, 여름철 잡초를 뽑거나 수확할 때에는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밭의 작물을 고라니가 다 먹어버리거나 내가 야채를 키우는 건지 잡초를 키우는 건지 헷갈리는 지경이 되거나 장마철 젖은 땅속에서 감자가 썩어서 전분이 되어버리는 비극이 일어난다. 

 

경험적으로 보면 커뮤니티에 오는 사람들은 '식물파'와 '동물파', 그리고 '건축파'가 있는데, 나는 의외로 내가 식물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밭에 가야하는 날이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낮엔 너무 더우니까)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가 머리가 뜨거워지면 밭에 가서 두세시간 일하면서 생기발랄해져서 돌아왔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도시에만 살아서 자신의 본성을 모를 뿐이다.

 


4. 건축 토목 능력
우리같은 전원형 커뮤니티의 역사는 곧 건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수십년 되어 쓰러져가는 농가주택을 고쳐서 살았고, 그 다음엔 버려진 폐교를 리모델링 했고, 그 다음부터는 매년 크고작은 건물을 한 채씩 지었다. 새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스탭 중 한 분이 목조건축학교에 가서 집 짓는 법을 배워오셨기 때문이다. 

 

건축뿐만이 아니다. 아예 터를 닦고 바위를 깨며 돌을 쌓는 '토목'능력은 매우 유용하다. 우리는 몇 번 돈주고 굴삭기며 덤프트럭을 불렀다가 하루에 수십만원씩 하는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결국 굴삭기를 사고 면허도 취득했다. 이제는 동네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거리를 받아서 '알바'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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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일하는 건 굴삭기인데 내 팔이 아픈 것일까... 

 

이런 식으로 오랫동안 터를 닦고 건물을 짓다보니 다들 하나둘씩 특기가 생기는데, 어떤 사람은 타일 전문, 어떤 사람은 빠데(석고 퍼티) 전문, 어떤 사람은 드릴 전문이 되는 식이다. 물론 바쁘면 모두가 달려들어 야간작업을 불사한다. 나는 엄벙덤벙하는 성격이라 1mm의 엄밀함이 요구되는 작업에서는 모두 퇴출당했고, 색을 고르는 일에 열정을 보였더니 어느새 페인트칠이 내 일이 되었다. .

 


5. 일을 찾아서 하는 능력
이것이 왜 능력이 되냐면, 커뮤니티는 위아래 개념이 희박하고,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에나 할 일은 널려 있다. 당장 하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는 않지만 방치하면 공간이 황량해지고 마음이 썰렁해지는 그런 일들이다. 예를 들면 다같이 고기 구워먹었을 때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 시작하기, 도처에 자라나는 잡초 뽑기, 땅에 떨어진 은행 주워 손질하기, 남아도는 야채로 장아찌 만들기, 장작 패기, 물품 정리, 마당 쓸기, 개 산책시키기, 찢어진 천막 수리, 꽃씨 채취, 재래식 화장실 퍼내기 등등 찾아서 하기 시작하면 무궁무진한 일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커뮤니티 생활의 오묘한 점이,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 사람에게 힘이 실리는 구조다. 보통 일반적인 사회에서 허드렛일을 한다는 것은 지위가 낮다는 뜻이 되고, 그래서 많이 배우고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하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커뮤니티에서는 남들이 하기 귀찮아 하는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왠지 동의하게 되고, 힘들다고 하면 도와주게 되고, 자리에 없으면 먹을 것 남겼다가 챙겨주게 된다.

 

마찬가지로 커뮤니티에 들어와 빨리 적응하고 싶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찾아서 쉴새없이 하면 된다. 옷과 손발이 흙투성이가 되고 먼지투성이가 될수록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먹을 것이 쌓이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6.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능력
커뮤니티에서의 인간관계는 매우 독특해서, 우리는 서로에게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가끔은 다들 폭발하기 직전까지 갈 때도 많다. 종종 이런저런 프로젝트가 연달아 몰아치면 몸이 지치고, 마음에도 여유가 없고, 그런데 스트레스를 풀 방법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누군가 내 이야기를 조금 들어주기만 해도 굉장한 위안이 된다. 그래서 깨달았다. 아, 이것도 능력이구나. 오히려 눈에 띄는 다른 능력들보다 더 가치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그냥 같은 공간에 앉아 있기만 해도 날카롭던 공기가 사르르 녹아내리면서 뭐든 쉽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고 갑자기 없던 활력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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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는 커피를 들고 찾아가게 된다. (출처: flickr @neonfear)

 

 

7. 쓴소리를 하는 능력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평균보다 좀더 선량하고 착한 분들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상처입을까 두려워 쓴소리를 잘 하지 못한다. 그냥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분이라면, 가끔 만나서 술이나 한잔 걸치는 사이라면 이렇게 좋은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커뮤니티는 과업을 수행하는 곳이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서로에게 좋은 말만 하고 살 수도 없다. 때로는 서로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단점을 지적해서 개선하도록 요청하여야 하고, 그로 인해 미움받는 것도 감수하여야 한다. 

 

 

 

이렇게 정리한 능력 외에도, 커뮤니티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갖춰야 하는 능력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렇지만 일단 이 능력들만 제대로 갖추어도 된다. 그렇다면 나는, HAJAMA의 스탭들은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추었는가?

 

그럴리가...

 

확실히 처음 커뮤니티에 왔을 때 '무능력자' 혹은 '마이너스 능력자(남들에게 민폐를 끼침)' 상태였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바닥에서 한 3cm 정도는 떠서 둥둥 날아가고 있다고는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여전히 피로한 날엔 소금국을 만들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기계를 망가뜨리고, 때를 놓쳐 논밭을 놀리고, 각자 자기 말만 하다가 토라지고,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며칠이고 방구석에 처박히기도 한다. 다만 그렇게 갈팡질팡 헤매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늦었지만 여전히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 뿐이다. 그러고보 보면, 가야 할 길을 꿋꿋이 갈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어떤 초능력보다도 더 얻기 어렵고, 또 가치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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